아부 탈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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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부 탈리브는 535년 메카에서 태어났으며, 무함마드의 삼촌이자 보호자였다. 그는 가난했지만 조카 무함마드를 헌신적으로 돌보았고, 무함마드가 이슬람교를 설파하자 쿠라이쉬 부족의 압력으로부터 그를 지켰다. 아부 탈리브는 시인이었으며, 평생 이교도로 살다가 619년경 사망했다. 그의 죽음은 무함마드에게 '슬픔의 해'로 불렸으며, 수니파와 시아파는 아부 탈리브의 이슬람 개종 여부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보인다. 그는 파티마 빈트 아사드와 결혼하여 여러 자녀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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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 탈리브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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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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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임란 또는 압드 마나프 |
출생 | 기원후 535년 경, 메카, 헤자즈(현재의 사우디 아라비아) |
사망 | 기원후 619년 경, 메카, 헤자즈 |
배우자 | 파티마 빈트 아사드 |
자녀 | 탈리브 아킬 자파르 알리 파키타 주마나 라이타 |
아버지 | 압드 알-무탈리브 |
어머니 | 파티마 빈트 암르 |
형제자매 | 알-하리스 (이복형제) 압둘라 (친형제) 알-주바이르 (친형제) 알-아바스 (이복형제) 함자 (이복형제) 하질 (이복형제) 알-무카우임 (이복형제) 아부 라합 (이복형제) 움 하킴 (친자매) 우마이마 (친자매) 아르와 (친자매) 아티카 (친자매) 바라 (친자매) 사피야 (이복자매) |
매장지 | 잔나트 알-무알라 메카 |
직위 | |
직책 | 바누 하심 부족장, 쿠라이시 |
임기 | 기원후 578년 경 - 619년 |
이전 | 압드 알-무탈리브 이븐 하심 |
이후 | 아부 라합 |
2. 초기 생애
아부 탈리브는 무함마드가 8세 때 할아버지 압드 알 무탈리브가 사망하자, 가난에도 불구하고 그를 맡아 친아들처럼 극진히 보살폈다.[8] 무함마드를 사막을 오가는 대상(隊商)에 동행시키며 곁에서 키웠고, 밤에도 항상 옆에서 잠들었다고 한다.
아부 탈리브는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인품이었다. 하지 순례자들에게 ''시카야''(Siqaya)와 ''리파다''(Rifada, 음식과 음료)를 제공하는 역할[9]을 맡았으나, 대가족으로 인해 가산이 줄었다. 훗날 무함마드가 하디자와 결혼하여 생활이 안정된 후, 아부 탈리브의 아들 알리를 양자로 삼은 것은 그의 어려운 가계를 돕기 위해서였다.[13][14][15][16]
2. 1. 출생과 가문
아부 탈리브는 535년 헤자즈 지역의 메카에서 태어났다. 그는 하심 가문의 족장인 압드 알-무탈리브의 아들이자, 무함마드의 아버지인 압둘라 이븐 압드 알-무탈리브의 형제였다. 압둘라는 무함마드가 태어나기 전에 사망했다. 무함마드의 어머니 아미나 빈트 와하브가 사망한 후, 어린 무함마드는 할아버지 압드 알-무탈리브의 보살핌을 받았다. 무함마드가 여덟 살이 되자 압드 알-무탈리브가 사망했고, 무함마드는 삼촌 중 한 명인 아부 탈리브에게 맡겨졌다. 아부 탈리브는 가난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타적인 마음으로 무함마드를 거두었다.[8]아부 탈리브는 하지 순례자들에게 ''시카야''(Siqaya)와 ''리파다''(Rifada) (음식과 음료)를 제공하는 역할을 맡았지만, 가난하게 살았다. 그는 순례자들에 대한 의무를 다하기 위해 형제 아바스에게 돈을 빌려야 했지만, 이를 갚지 못해 아바스에게 그 역할을 넘겨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회적 지위는 이 실패로 인해 손상되지 않았다.[9]
무함마드는 삼촌을 사랑했고, 아부 탈리브 역시 그를 사랑했다.[10] 아부 탈리브는 재능 있는 시인으로 기억되며, 무함마드를 지지하는 많은 시들이 그에게 귀속된다.[3][11] 어느 날 아부 탈리브가 무역 원정을 떠나려 하자 무함마드는 울며 그와 떨어지는 것을 참지 못했다. 이에 아부 탈리브는 "신에게 맹세하건대, 그를 데려갈 것이며, 우리는 결코 서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답했다.[12]
훗날 하디자와 결혼하여 생활이 안정된 무함마드는 아부 탈리브의 어려운 가계를 돕기 위해 그의 아들 알리를 양자로 삼았다.[13][14][15][16]
2. 2. 무함마드의 양육
아부 탈리브는 무함마드의 아버지 압둘라 이븐 압드 알-무탈리브가 무함마드가 태어나기 전에 사망하고, 무함마드의 어머니 아미나 빈트 와하브마저 사망하자 어린 무함마드를 거두어 길렀다.[8] 무함마드가 8살이 되던 해 할아버지 압드 알 무탈리브가 사망하자, 아부 탈리브는 가난했음에도 이타적인 마음으로 무함마드를 맡았다.[8]아부 탈리브는 하지 순례자들에게 '시카야'(Siqaya)와 '리파다'(Rifada, 음식과 음료)를 제공하는 역할을 맡았지만 가난하게 살았다.[9] 그는 순례자들에 대한 의무를 다하기 위해 형제에게 돈을 빌려야 했고, 결국 그 역할을 넘겨야 했다.[9]
무함마드는 삼촌을, 아부 탈리브는 무함마드를 서로 사랑했다.[10] 아부 탈리브는 무역 원정을 떠날 때 무함마드가 슬퍼하자 "신에게 맹세하건대, 그를 데려갈 것이며, 우리는 결코 서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그를 데려갔다.[12]
훗날 무함마드는 가뭄으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아부 탈리브를 돕기 위해 그의 아들 알리를 맡아 길렀다.[13][14][15][16] 이는 하디자와 결혼하여 생활이 안정된 후였다고 한다.
그러나 아부 탈리브는 평생 신앙 고백을 하지 않고 이교도로 사망했다. 시아파에서는 아부 탈리브를 무슬림으로 보지만, 수니파에서는 그가 불신앙인 채로 죽었다고 본다.[39] 하디스에 따르면, 무함마드는 아부 탈리브 사후 그가 지옥에 있다고 말했다.[40]
3. 무함마드의 보호자
무함마드는 어린 시절 부모를 모두 잃고 할아버지 압드 알 무탈리브에게 맡겨졌으나, 8세 때 할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삼촌 아부 탈리브의 손에서 자랐다. 아부 탈리브는 어린 조카 무함마드를 극진히 아꼈으며, 사막을 오가는 대상(隊商)에 동행시킬 정도로 늘 곁에 두고 보살폈다.[17]
아부 탈리브는 가족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만년에 가세가 기울자, 하디자와 결혼하여 경제적으로 안정된 무함마드는 아부 탈리브의 아들 알리를 양자로 삼아 그의 가계를 돕기도 했다.
그러나 아부 탈리브는 무슬림으로서 신앙 고백을 하지 않고 이교도로 생을 마감했다. 임종을 지켜본 아바스 이븐 압드 알 무탈리브|아바스ar는 그가 마지막 순간 입술을 움직여 신앙 고백을 했다고 증언했지만,[37] 무함마드는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38] 꾸란 28장 56절에는 사람의 신앙은 인간의 의지로 바꿀 수 없다는 내용이 있는데, 수니파는 이를 아부 탈리브가 불신앙 상태로 죽었다는 의미로 해석한다.[39]
하디스에 따르면, 무함마드는 메카의 유력 인사로부터 "너를 키워준 부모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지옥에 있지만, 나의 중재로 조금 더 나은 곳으로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라고 소극적으로 답했다고 한다.[40] 이슬람 교리상 다신교도는 지옥에 갈 수밖에 없기에, 은인일지라도 무함마드가 답을 달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무함마드는 하심 가문의 차기 당주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반면 시아파는 아부 탈리브를 무슬림으로 본다. 앞서 언급된 하디스를 거짓으로 여기고, 아부 탈리브가 임종 직전 신앙 고백을 했다는 점을 인정하며, 그가 과거 예언자들과 혈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무함마드의 결혼식에서 이슬람식 축사를 했다는 점 등을 근거로 제시한다.[41]
3. 1. 부족 사회에서의 역할
바누 하심의 지도자였던 아부 탈리브는 무함마드를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무함마드가 이슬람교의 가르침을 설파하기 시작하자, 다른 쿠라이쉬 씨족 구성원들은 점차 무함마드에게 위협을 느꼈다. 그를 진정시키려는 시도로, 쿠라이쉬 부족은 아부 탈리브에게 조카를 침묵시키거나 통제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이러한 압력에도 불구하고, 아부 탈리브는 무함마드를 지지하며 쿠라이쉬의 다른 지도자들로부터 그를 보호했다.[17] 쿠라이쉬 지도자들은 여러 차례 아부 탈리브와 직접 대면했으나, 아부 탈리브는 그들을 무시했다. 그로 인해 쿠라이쉬와의 관계가 악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해서 무함마드를 지지했다. 한 기록에 따르면, 쿠라이쉬는 이 갈등으로 인해 바누 하심과 싸우겠다고 위협하기까지 했다.[18]쿠라이쉬는 심지어 아부 탈리브에게 뇌물을 주려 시도했다. 그들은 아부 탈리브에게 만약 무함마드를 자신들에게 넘겨주면, 쿠라이쉬에서 가장 잘생긴 청년인 '우마라 이븐 알 왈리드 이븐 알 무기라'를 입양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제안했다.[18][20][21] 이마저 실패하자, 쿠라이쉬는 다른 부족들의 지지를 얻어 바누 하심 가문과의 거래 및 결혼을 금지하는 보이콧을 시작했다. 이 보이콧은 무함마드가 처음 계시를 받은 지 7년 후에 시작되어 3년 동안 지속되었다.[3] 그 목표는 하심족에게 압력을 가하고 심지어 굶주림으로써 굴복시키려는 것이었다.[22] 안전을 위해 바누 하심의 많은 구성원들이 아부 탈리브 근처로 이주했고, 그곳은 마치 게토와 같아졌다.[22] 아부 탈리브의 형제인 아부 라하브는 이 문제에 대해 쿠라이쉬 편을 들었으며,[22][24] 무함마드가 미쳤거나 사기꾼이라고 생각했다.[25]
무함마드를 보호하는 것은 아부 탈리브와 바누 하심에게 상당한 압력을 가했다. 한번은 아부 탈리브가 무함마드에게 "나와 너 자신을 구원하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짐을 나에게 지우지 말라"고 외쳤다. 무함마드는 "오 삼촌! 전능하신 하나님께 맹세하건대, 그들이 오른손에 태양을, 왼손에 달을 쥐어준다 해도 이 대의를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입증하시거나 내가 그 과정에서 죽임을 당할 때까지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답했다.[26] 조카의 감정을 본 아부 탈리브는 "가서, 조카여, 네가 하고 싶은 말을 하라. 신께 맹세하건대, 나는 어떤 이유로든 너를 넘겨주지 않을 것이다."라고 답했다.[27]
3. 2. 쿠라이쉬 부족과의 갈등
무함마드가 이슬람교의 가르침을 설파하기 시작하자, 다른 쿠라이쉬 씨족 구성원들은 점점 무함마드에게 위협을 느꼈다. 그를 진정시키려는 시도로, 그들은 아부 탈리브에게 조카를 침묵시키거나 통제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이러한 압력에도 불구하고, 아부 탈리브는 무함마드를 지지하며 쿠라이쉬의 다른 지도자들로부터 그를 보호했다.[17] 쿠라이쉬 지도자들은 여러 차례 아부 탈리브와 직접 대면했으나, 아부 탈리브는 그들을 무시했다. 그로 인해 쿠라이쉬와의 관계가 악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부 탈리브는 계속해서 무함마드를 지지했다. 한 기록에 따르면, 쿠라이쉬는 이 갈등으로 인해 바누 하심과 싸우겠다고 위협하기까지 했다.[18] 이러한 대립에 대한 한 일화에서, 아부 탈리브는 무함마드를 불러 쿠라이쉬와 대화하게 했다. 무함마드는 쿠라이쉬 지도자들에게 샤하다를 외칠 것을 요청했고, 그들은 경악했다.[19]쿠라이쉬는 심지어 아부 탈리브에게 뇌물을 주려 시도했다. 그들은 아부 탈리브에게 만약 무함마드를 자신들에게 넘겨주면, 쿠라이쉬에서 가장 잘생긴 청년인 '우마라 이븐 알 왈리드 이븐 알 무기라'를 입양할 수 있게 해 주겠다고 말했다.[18][20][21] 이것마저 실패하자, 쿠라이쉬는 다른 부족들의 지지를 얻어 바누 하심 가문과의 거래를 거부하고 결혼을 금지하는 보이콧을 시작했다. 이 보이콧은 무함마드가 처음 계시를 받은 지 7년 후에 시작되어 3년 동안 지속되었다.[3] 그 목표는 하심족에게 압력을 가하고 심지어 굶주림으로써 굴복시키려는 것이었다.[22] 안전을 위해 바누 하심의 많은 구성원들이 아부 탈리브 근처로 이주했고, 그곳은 마치 게토와 같아졌다.[22] 이는 과도한 고통을 야기하지는 않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다른 부족에 가족 구성원을 두고 있어 그들이 몰래 물건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22] 아부 탈리브의 형제인 아부 라하브는 이 문제에 대해 쿠라이쉬 편을 들었다. 그는 쿠라이쉬에 대한 지지를 보여주기 위해 압드 샴스 구역의 한 집으로 이사했다.[22][24] 그는 무함마드가 미쳤거나 사기꾼이라고 생각했다.[25]
무함마드를 보호하는 것은 아부 탈리브와 바누 하심에게 상당한 압력을 가했다. 한 번은 아부 탈리브가 무함마드에게 "나와 너 자신을 구원하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짐을 나에게 지우지 말라"고 외쳤다. 무함마드는 "오 삼촌! 전능하신 하나님께 맹세하건대, 그들이 오른손에 태양을, 왼손에 달을 쥐어준다 해도 이 대의를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입증하시거나 내가 그 과정에서 죽임을 당할 때까지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답했다.[26] 조카의 감정을 본 아부 탈리브는 "가서, 조카여, 네가 하고 싶은 말을 하라. 신께 맹세하건대, 나는 어떤 이유로든 너를 넘겨주지 않을 것이다."라고 답했다.[27]
3. 3. 바누 하심 보이콧
무함마드가 이슬람교의 가르침을 설파하기 시작하자, 다른 쿠라이쉬 씨족 구성원들은 점점 무함마드에게 위협을 느꼈다. 그를 진정시키려는 시도로, 그들은 아부 탈리브에게 조카를 침묵시키거나 통제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이러한 압력에도 불구하고, 아부 탈리브는 무함마드를 지지하며 쿠라이쉬의 다른 지도자들로부터 그를 보호했다.[17] 쿠라이쉬 지도자들은 여러 차례 아부 탈리브와 직접 대면했지만, 아부 탈리브는 그들을 무시했고, 그로 인해 쿠라이쉬와의 관계가 악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무함마드를 지지했다. 한 기록에 따르면, 쿠라이쉬는 이 갈등으로 인해 바누 하심과 싸우겠다고 위협하기까지 했다.[18]쿠라이쉬는 아부 탈리브에게 뇌물을 주려 시도하기도 했다. 그들은 아부 탈리브에게 만약 무함마드를 자신들에게 넘겨주면, 쿠라이쉬에서 가장 잘생긴 청년인 '우마라 이븐 알 왈리드 이븐 알 무기라'를 입양할 수 있게 해 주겠다고 말했다.[18][20][21] 이것마저 실패하자, 쿠라이쉬는 다른 부족들의 지지를 얻어 바누 하심 가문과의 거래를 거부하고 결혼을 금지하는 보이콧을 시작했다. 이 보이콧은 무함마드가 처음 계시를 받은 지 7년 후에 시작되어 3년 동안 지속되었다.[3] 그 목표는 하심족에게 압력을 가하고 심지어 굶주림으로써 굴복시키려는 것이었다.[22] 안전을 위해 바누 하심의 많은 구성원들이 아부 탈리브 근처로 이주했고, 그곳은 마치 게토와 같아졌다.[22]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다른 부족에 가족 구성원을 두고 있어 그들이 몰래 물건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에, 이 보이콧이 과도한 고통을 야기하지는 않았다.[22][23] 아부 탈리브의 형제인 아부 라하브는 이 문제에 대해 쿠라이쉬 편을 들었다. 그는 무함마드가 미쳤거나 사기꾼이라고 생각했다.[25]
무함마드를 보호하는 것은 아부 탈리브와 바누 하심에게 상당한 압력을 가했다. 한 번은 아부 탈리브가 무함마드에게 "나와 너 자신을 구원하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짐을 나에게 지우지 말라"고 외쳤다. 무함마드는 "오 삼촌! 전능하신 하나님께 맹세하건대, 그들이 오른손에 태양을, 왼손에 달을 쥐어준다 해도 이 대의를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입증하시거나 내가 그 과정에서 죽임을 당할 때까지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조카의 감정을 본 아부 탈리브는 "가서, 조카여, 네가 하고 싶은 말을 하라. 신께 맹세하건대, 나는 어떤 이유로든 너를 넘겨주지 않을 것이다."라고 답했다.[27]
4. 사망
아부 탈리브는 619년경, 80세가 넘은 나이에 사망했으며, 이는 무함마드의 선교 활동 시작 후 약 10년 뒤였다.[3] 이 해는 무함마드에게 슬픔의 해로 알려졌다.
4. 1. 죽음과 슬픔의 해
아부 탈리브는 619년경, 80세가 넘은 나이에 사망했으며, 이는 무함마드의 선교 활동 시작 후 약 10년 뒤였다.[3] 이 해는 무함마드에게 슬픔의 해로 알려졌는데, 삼촌 아부 탈리브가 사망했을 뿐만 아니라 아부 탈리브가 죽은 지 한 달 만에 부인 하디자 빈트 후와일리드도 사망했기 때문이다.아부 탈리브가 죽은 후, 무함마드는 보호를 받지 못했다. 아부 탈리브의 형제이자 가문의 후계자인 아부 라합은 무함마드의 적이었기에 그를 보호하지 않았고, 무함마드와 그의 추종자들은 엄청난 박해에 직면했다. 무함마드는 "알라의 이름으로, 쿠라이쉬는 아부 탈리브가 죽은 후만큼 나를 괴롭힌 적이 없다."[28][29]라고 외쳤다고 전해진다. 초기 무슬림들은 쿠라이쉬의 박해를 피하기 위해 아비시니아로, 그리고 이후 메디나로 이주했다.
4. 2. 이슬람교 개종 여부에 대한 논쟁
아부 탈리브의 이슬람교 개종 여부는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에 논쟁거리이며, 각 종파의 정치적 목적과도 관련이 있다.[30]아부 탈리브는 무함마드의 삼촌이자 양육자였다. 무함마드는 어릴 적 부모를 잃고 할아버지 압드 알 무탈리브 밑에서 자랐으나, 할아버지가 사망한 후 아부 탈리브가 그를 거두었다. 아부 탈리브는 조카를 극진히 아꼈다. 훗날 무함마드가 하디자와 결혼하여 생활이 안정된 후에는 아부 탈리브의 아들 알리를 양자로 삼아 어려운 가계를 돕기도 했다.
하지만 아부 탈리브는 평생 신앙 고백을 하지 않고 이교도로 사망했다. 시아파는 아부 탈리브가 무슬림이었다고 주장하는 반면, 수니파는 그가 불신앙인 채로 죽었다고 본다.
4. 2. 1. 수니파의 관점
수니파 이슬람에서는 코란 구절 28:56("오, 예언자여! 진실로 그대가 원하는 자를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알라께서 그분을 원하시는 자를 인도하시니라")가 조카의 손에 의해 아부 탈리브가 이슬람을 받아들인 것에 관하여 계시되었다고 전해진다.[31][32]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읜 무함마드는 할아버지 압드 알 무탈리브에게 거두어졌지만, 그 할아버지도 무함마드가 8세 때 사망하여, 무함마드는 삼촌 아부 탈리브에게 거두어졌다. 아부 탈리브는 어린 조카 무함마드를 매우 귀여워하여, 사막을 오가는 대상에 동행하게 하며 곁에서 키웠고, 밤에도 항상 옆에서 잠들었다고 한다.
아부 탈리브는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인품이었다. 만년에는 너무 많은 대가족으로 인해 가산이 줄어, 아부 탈리브의 일가는 쇠퇴했다. 훗날 하디자와 결혼하여 생활이 안정된 무함마드가 아부 탈리브의 아들 알리를 양자로 삼은 것은 아부 탈리브 일가의 어려운 가계를 돕기 위해서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평생 동안 무슬림으로서의 신앙 고백은 하지 않고, 이교도로서 사망했다. 그의 죽음을 지켜본 알 아바스|아바스 이븐 압드 알 무탈리브ar는, 마지막에 그가 입술을 움직여 신앙 고백을 했다고 증언했지만,[37] 무함마드는 들리지 않았다고 대답했다.[38] 꾸란 제28장 56절에는, 사람의 신앙은 사람에 의해 바뀔 수 없다고 설하고 있는데, 수니파의 이해에 따르면, 이는 아부 탈리브가 불신앙인 채로 죽었다는 것을 가리킨다.[39]
하디스에 따르면, 이때 무함마드는 메카의 유력자로부터 "너의 양육 부모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라고 질문을 받았을 때, "지옥에 있지만, 자신의 중재로 더 얕은(편안한) 계층으로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라고 소극적인 대답을 했다고 한다.[40] 이슬람의 교리에선 다신교를 받드는 인간은 지옥에 가기 때문에, 설령 은인이라도 무함마드는 대답을 바꿀 수 없었다고 여겨진다. 이 때문에, 무함마드는 하심 가문의 차대 당주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하고, 더 어려운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4. 2. 2. 시아파의 관점
시아파는 아부 탈리브가 무함마드의 올바른 지지자이며, 하디자와의 결혼 때 아부 탈리브가 결혼 설교를 한 것은 그가 일신교 신앙을 가졌음을 증명한다고 믿는다.[33] 또한 아부 탈리브가 무슬림이었고 무슬림으로 죽었다고 주장한다.[33]최근 수세기의 수니파 학자들 또한 아부 탈리브에 대한 시아파의 주장을 지지한다고 주장한다.[34]
시아파는 알리를 지도자로 하며, 아부 탈리브를 무슬림으로 본다. 앞서 언급한 하디스를 허위로 간주하고, 말년의 신앙 고백을 사실로 채용하며, 그가 과거의 예언자들과 연관된 혈통이며, 무함마드의 혼례에서 이슬람에 따른 축사를 했다는 것을 근거로 한다.[41]
5. 가족
아부 탈리브는 파티마 빈트 아사드와 결혼하여 여러 자녀를 두었다. 그는 가족을 소중히 여겼으나, 만년에 대가족으로 인해 가산이 줄었다. 훗날 하디자와 결혼하여 생활이 안정된 무함마드가 아들 알리를 양자로 삼은 것은 아부 탈리브 일가를 돕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무함마드는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할아버지 압드 알 무탈리브에게 거두어졌으나, 8세 때 할아버지마저 사망하여 삼촌 아부 탈리브에게 거두어졌다. 아부 탈리브는 어린 조카 무함마드를 몹시 아껴 대상에 동행시키고 밤에도 곁에서 재우는 등 친자식처럼 키웠다.
5. 1. 자녀

아부 탈리브는 파티마 빈트 아사드와 결혼하여 네 아들과 세 딸을 두었다.
아들 |
---|
딸 |
---|
아부 탈리브의 자녀 양육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졌다.
자녀 | 양육자 |
---|---|
알리 | 무함마드와 그의 아내 하디자 빈트 후와일리드 |
탈리브 | 압바스 이븐 압드 알무탈리브와 그의 아내 루바바 빈트 알하르시 |
자파르 | 함자 이븐 압드 알무탈리브와 그의 아내 살마 빈트 우마이스 |
아킬 | 알주바이르 이븐 압드 알무탈리브와 그의 아내 아티카 빈트 아비 와합 |
파키타, 주마나, 라이다 | 아부 탈리브 이븐 압드 알무탈리브와 그의 아내 파티마 빈트 아사드 |
5. 2. 가계도
킬라브 이븐 무라와 파티마 빈트 사드의 후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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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사이 이븐 킬라브 (고조부) | 후바 빈트 훌라일 (고조모) |
압드 마나프 이븐 쿠사이 (고조부) | 아티카 빈트 무라 (고조모) |
하심 이븐 압드 마나프 (증조부, 바누 하심의 조상) | 살마 빈트 암르 (증조모) |
압드 알무탈리브 (조부) | 파티마 빈트 암르 (조모) |
아부 탈리브 (아버지) | 아미나 (어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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